"수학능력시험을 감독하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도박장으로 달려간 교사가 있었습니다. 아내의 출산 비용으로 지불해야 할 눈물 섞인 돈을 들고 도박장으로 달려간 30대 가장이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 국회의원의 대정부 질의 내용 중 일부이다.

베팅산업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특히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도박으로 인생의 승부수를 띄우려다 잘못되는 경우가 속출하는 등 전국에 ‘한탕 물결’이 전국에 출렁거리고 있다.

한때 인생 역전의 돌파구로 불렸던 로또를 비롯해 경마·경정 등에서 한 번만 잘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대박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갈 곳 없는 서민들이 너도나도 한탕주의에 뛰어들고 있는 것.

아이들은 부모가 주는 용돈을 사이버 머니(가상화폐)로 바꿔 게임에 열중하는가 하면 어른들은 경마 경정, 경륜장을 오가며 현금을 주고받으면서 도박 중독에 빠져들고 있다.

로또복권과 경마, 경정, 경륜, 카지노 게임장 등 사행산업이 만들어 내는 행운과 대박이 이 시대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도박 심리에 빠져드는 심각한 증세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하남 덕풍동에서 부동산 중개소 사무실을 운영하며 50억대 재산을 모은 K씨. 한때 잘나가던 그였지만 2007년도부터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미사리경정장에 우연히 놀러 갔다가 베팅을 시작했던 그는 이후 경정에 빠져들었다.

고객과 토지거래 계약서를 쓰기로 하고도 약속을 어길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놓이자 중개업소를 내놓고 본격적으로 경정장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고 가지고 있던 재산도 다 탕진하고 지금은 도박 중독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경정이라는 터널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입니다. 실은 가지고 있는 돈은 거의 바닥났지만 한탕만 잘하면 본전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먹으면서 게임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곤 하지만 끊기가 참 어렵더군요. 특히 경정은 본장 외에도 장외발매소가 많아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요즘은 자살 충동이 일어날 만큼 우울하고 힘이 많이 듭니다." 도박중독자 치료모임 ''단도박''에 올라있는 한 청년의 글이다.

단도박 모임이 올해 창립 38주년을 맞는다.

1984년 6월 경기 부천시에서 3명의 도박중독자가 만난 것이 이 모임의 시초. 35년 만에 회원 수는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전국에 49개 지부와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호주 시드니 등 5곳에 교민을 위한 해외지부도 마련돼 있다.
 
한방 유혹에 이용객 증가, 합법 시장까지 '흔들'
메이저급 경정 출신 선수의 탈선…사설 경정 손댔다 빚더미

1기 경정 선수 출신인 고 서모(52) 씨는 한때 잘나가던 메이저급 선수였다. 각종 대상경주 등 규모가 큰 경정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하는 등 상금도 많이 받았고 다승 순위에서도 5위안에 들었다.

그러다 보니 상금도 쌓이고 수천만 원대의 연봉을 받을 정도로 돈벌이도 좋았다.

그러던 그는 경기 도중 상대 선수와 충돌하면서 팔과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재활치료를 받은 뒤 선수로 복귀했지만, 성적은 하위를 맴돌았고 완치되지 않은 몸으로 경기를 한다는 것도 역부족이었다.

육체적 한계를 느낀 그는 선수 생활을 그만뒀지만 첫 직장에 1기 프로선수라 자부했던 그는 경정을 버릴 수 없어 미사리 경정장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베팅 참고서라 불리는 예상지 업체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도 했지만, 돈벌이는 되지 않았다.

방황하던 그는 후배의 유혹에 뿌리치지 못하고 불법 사설 경정(속칭 마때기)에 손을 댔다. 이유는 1기 선수로 활동을 해본 만큼 누구보다도 경정 경기를 분석하고 예상을 하는데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30문의 1(쌍승식)이란 확률을 넘지 못했다. 이때부터 사채도 끌어다 썼다. 서씨가 진 빚는 1억 4,000만원이 넘었다.

결국 서씨는 2,000억원대 불법 사설 경정 조직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경찰에 덜미를 잡혀 입건됐지만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미사리 경정공원 전경 [이미지 출처 = 하남시청]

경정 경륜중독 상담자 5년간 10배
과도몰입 자도 급증세

사행성 게임 중독은 땀 흘려 일하는 근로정신을 해이하게 하고 한탕주의 문화를 확산시켜 사회를 좀먹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사행산업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단순히 관광·오락산업의 한 부분 정도로 이해하고 이를 확대했다.

그로 인해 지방정부마다 사행산업을 유치하려고 과도한 경쟁을 벌였다. 부산이 2004년 9월에는 경마장을 2005년 경륜장을 열었고, 창원도 2006년 경륜장을 개설했다.

수·목요일에는 모터보트가 달리는 경정에 매달려 베팅을 즐길 수 있다. 또 금 토 일요일에는 경륜과 경마 두 가지가 있어 입맛에 맞는 게임을 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제 불황 속에서 한탕을 노리거나 고달픈 현실을 잊기 위해 사행성 오락에 몰두하는 이들이 많다. 재산을 탕진하고, 심지어 집까지 저당 잡히고 길거리로 나앉는 일도 있다고 하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주민 김모(45·남)"경기가 어려워지자 일부에서는 소싸움이나 투견까지 도박화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며 "이러한 것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면 대한민국은 도박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것"이라고 우려감을 표출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관계자는 "합법적 사행산업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지만 불법적으로 형성된 사행산업으로 도박 중독이 심각한 수준까지 올랐다"며 "불법 사행산업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통합 감독 기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