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1시 6분 하남시 미사동 미사리 경정장.

미사리 경정장은 경주권 발매가 시작되는 12시 까지 2시간 남짓 남았지만 오전 9시 경 부터 한몫을 잡겠다는 이용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오전 10시경에는 1500여명의 이용객들로 북색통을 이뤘다.

입장객은 대부분은 40∼50대의 남성이 가장 많았고 간혹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들과 여성들도 꽤 눈에 띄었다.

1층에 마련된 식당과 2층 매점에는 예상지를 든 이용객들이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는지 라면과 백반, 김밥 등으로 때늦은 아침을 때우고 있었고 화장실에는 자동차 등으로 소액 대출을 해준다며 사채업자들이 뿌린 명함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또 건물 1층과 2층에는 10여종이 넘는 경정예상지를 사기 위해 이용객들이 줄을 서는 등 진을 치고 있었다.

국내 유일의 경정장이 소재한 미사리조정경기장에서 열리는 경주실황을 실시간으로 관람할 수 있는 국민체육공단 경주사업본부 소속 미사리경정장 1·2층 객장은 이용객들이 내뿜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날 관람한 것은 오후 1시 6분부터 시작되는 4경주.

첫 번째 경주가 시작되면서 1층과 2층 관람동은 경주장면을 응시하던 고객들의 함성과 욕설, 탄식으로 일순간 소란스러워졌다.

플라잉 스타트 방식인 경정은 6척의 모터보트가 출주신호와 함께 일제히 출발, 유리한 코스선점을 위한 선수들의 경쟁을 시작한다.

경정은 1호정부터 순서대로 코스에 진입하지 않고 선수들은 자유롭게 원하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어 유리한 코스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제2턴마크 부근에서 펼쳐지며 6척의 모터보트가 전속력으로 대시계가 0초(12시방향)에서 1.5초를 가리키는 사이에 출발선을 통과, 더 0초에 가까운 출발을 한 선수가 경주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선수들은 600m 거리의 경주수면을 3바퀴를 돌아 순위를 가리지만 가장 먼저 스타트 한 선수를 추월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결승지점에 도착할때까지 순위 변동은 거의 없다.

환호-탄성 '흥분의 도가니' 
고함소리, 한방에 끝내려다 "쪽박찼다"

첫번째 레이스에 걸린 배팅 총액은 3억2799여만원.

이때 부터 본격적인 순위경쟁이 벌어지고 조용했던 경기장은 흥분에 휩싸이고 결승점에 도달하는 6명의 선수에 따라 관람객들의 희비가 교차됐다.

"6번, 그래 그래 잘하고 있어 치고 나가, 나가란 말이야.", "상현아(선수 이름) 더 더 그래 그래 됐어…", "에이 더 박았어야 했는데…."

"5번 잘한다. 더 힘을 내.", "아휴 아깝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소음과 열기로 달아올랐다. 자신이 낙점한 선수들을 응원하는 고함과 입에 담지 못할 욕소리가 아귀다툼처럼 요동을 쳐 정신조차 혼미했다.

그러나 1분 뒤 경주가 끝나자 불처럼 번졌던 열기는 간데 없고 깊은 한숨 소리가 주인 노릇을 했다.

레이스가 끝나면 관중석은 바로 희비가 교차되고 관중들은 예상책자를 통해 다음 레이스에 배팅할 선수를 고른다.

경주가 끝나자 조금 전에 만난 40대 남자는 "오늘도 쪽박이네"라며 경주권을 조각조각 찢어 바닥에 흩뿌렸다. 그런 후 이제는 흡연실이 된 가족실로 들어가 담배를 피우며 다음 경주를 기다렸다.

경주사업본부는 매출액의 70%를 배당금(환급금)으로 돌려준다고 하지만 그 많은 사람 중에 돈을 딴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씽승식은 30분의 복승식 15분의1 등 적중 확률이 낮아 경기가 거듭될수록 베팅한 돈을 잃기 때문이다.

오후 6시5분경 이날의 마지막 경주가 끝난 후 객장은 몇 시간 전까지 '대박 티켓'이었던 경주권과 구매표가 전장의 시신처럼 널부러져 있었고 매 경주마다 수십억원의 배당 금액을 비췄던 대형 스크린은 다음주 수요일을 기다리며 덩그러니 벽에 걸려 있었다.

미사리 경정장은 이날 하루 동안 총 16경주를 개최하고 70여억 정도의는 매출액을 기록했다. 

월드컵이 열리던 해인 202년 6월에 개장한 사행성 조장'이라는 비판에도 불구,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매출확보에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용직을 포함, 200여명에 달하는 직원 등 고용창출 효과도 무시할 수 없고 상설 문화강좌, 어린이날 행사 개최, 소외계층 지원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최소화하고 이익의 지역 환원을 위해 다양한 공익사업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건전하게 경정을 즐기지 못하고 과다한 배팅으로 도박 수준에 이르면서 중독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수·목요일에는 모터보트가 달리는 경정에 매달리고 금 토 일요일에는 경륜과 경마 두 가지 게임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40대 남자는 "경정 경기가 열리는 수, 목요일 외에도 경마나 경륜장을 찾아다니고 있다"며 "몇번이나 끊으려고 했지만 자고 일어나면 경주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앉아 있던 60대 노인도 "정년 퇴직한 후 소일거리로 이곳을 찾는다"며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모두 이곳에서 없앤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대화를 하는 사이 다음 경주가 시작됐고 열기는 다시 불꽃처럼 타올랐다.

40대 남자는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15년이 지난 현재 5억원 정도를 날렸다"며 "간혹 요행으로 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돈을 잃고 마는 것이 경정의 종착역"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을 한다는 그는 "처음에는 레저라고 생각하고 개장전 부터 이곳을 찾고 있지만 이용객들의 대부분은 적은 돈으로 '한방'을 노리는 도박꾼이며 노가다(막일)하는는 사람이 대부분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