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하남시 미사리경정장. 경주가 열리는 수요일과 목요일이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경기침체가 이어질수록 오히려 사행산업은 번창하기 마련이다. 돈에 쫓기다 보면 대박이란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다.

오전 8시가 되자 20대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건물에 위치한 경정장의 최대 수용 인원은 약 8000여명 정도. 하지만 계단, 비상구까지 발 디딜 틈도 없이 자리 잡은 사람들은 어림잡아도 5000여명은 넘어보였다.

경주의 시작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경주꾼들이 경주권구매창구로 몰려들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경주권발매기 인근에서 지켜본 결과, 마사회가 정한 구매한도인 1회 10만원씩 구매하는 이는 많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수십 장에 달하는 경주권을 1회에 구입한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경정장에서 만난 이모(45)씨는 “자동발매기를 이용해 경주당 최고 2000만원까지도 얼마든지 경주권구매가 가능해 전 재산을 탕진하는 건 일도 아니다”며 “로또와 다르게 현장에서 달리는 모터보트의 모습을 보면 희열을 느껴 재미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주가 시작되자 사람들의 시선은 경기에 집중됐고, 경주가 끝나자 기쁨과 아쉬움이 뒤섞인 탄성이 이어졌다. 왼손에 경주권을, 오른손에는 경정예상지를 들고 경주 장면을 주시하는 그들의 눈빛은 중독자의 눈빛이었다. 3분여만에 끝난 레이스에 돈을 잃은 사람들의 욕설과 폭언도 쏟아졌다.

어떤 이는 손에 쥔 경주권을 허공에 뿌리고 다음 경주 선수들의 기록을 훑더니 재차 경주권 발매창구로 향했다. 일부는 금연구역이지만 패배한 경주에 답답한 듯 연신 자리에서 줄담배를 피워댔다. 이날 한 경기에 최고 배당률은 12경주의 98.4배.

정부가 문화레저타운으로 추진한 미사리경정장은 도박장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려 보였다.

택배회사에서 일한다는 정모(37)씨는 “하루 벌어야 5만원에 불과한 돈이 손안에 쥐어질 뿐”이라며 “경정장에서 한 번 제대로 걸리면 일 안해도 살 수 있어 다들 경정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정장에는 단체로 온 일행도 많았다. 조모(51)씨는 평택에서 이웃주민 등 7명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원정을 왔다고 했다.

오후 6시께 폐장방송이 나오자 경정장 곳곳에선 “하루 만에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잃었다”며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찾아와 반드시 일확천금을 따내겠다”는 탄식이 이어지기도 했다.

주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수요일부터 경정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며 “화요일 오후부터 경정장으로 몰려들어 이틀간 머물며 돈을 탕진하고 목요일 저녁에 술을 먹고 돌아가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하남시 일원에 화요일께 여관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정을 하러 온 사람들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